“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 하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에 오세요.” “여러분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
이처럼 밝은 문구의 문장들은 장례식 초대장의 내용이다.
흔히 장례식 하면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이번 장례식의 분위기는 초대장(?)의 문구부터 달랐다. 장례식이 결혼식처럼 초대장이 있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검은 옷 말고 밝은 색깔의 옷을 입고 오라거나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자는 말은 무엇인가.
주인공은 김병국 선생이다. 올해로 미수(米壽)를 3년 앞뒀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 1년 전 전립선암이 발견됐고 온몸으로 전이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한부 인생이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 3층 김병국(85)씨의 '생전(生前) 장례식'에서
그가 평소 좋아하던 양희은의 '아침 이슬'과 여성 듀엣 '산이슬'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다.
선생은 자신의 특별한 장례식을 꿈꿨다. 자신이 떠난 뒤에 장례식이 무슨 소용이냐 싶어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그동안 친근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초대했다. 고마운 마음도 전하고, 서운한 감정도 풀려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선생은 장례식 중에 다툰 적이 있던 지인과 화해의 말을 나누며 마음을 풀기도 했다.
논어에서도 “人之將死, 其言也善(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하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김 선생은 생전 장례식을 통해 고전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
그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노년세대 노동조합인 노년유니온의 부위원장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노년유니온이 이번 장례식을 준비하는 데 앞장섰다. 선생이 입원 중인 서울 동부시립병원도 거들었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으며,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알던 우중충한 장례식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하는 장례식이었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히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다. 김병국 선생은 생전의 장례식을 치러 두고두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됐다.
이색적인 장례식으로 장례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김병국 선생. 그의 장례식 이름은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