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이호근 기자】=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전작인 ‘응답하라 1997’에 이어 큰 인기를 모으며 1990년대 문화와 향수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부터 밴드 ‘015B’의 '신인류의 사랑’, ‘그룹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 성진우의 ‘포기하지마’ 등 흘러가 가요를 다시 듣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노래 대부분은 당시 가요 순위프로그램을 대표하는 ‘가요 톱10’ 같은 순위프로그램에서 몇 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시간 단위로 순위가 바뀌는 지금의 음원차트 실시간 차트와는 궤를 달리하며 대중에게 천천히 알려지고, 오래도록 인기를 모았다.
마냥 옛날이 좋았다는 구태의연한 발언이 아닌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그저 지나쳐가고 마는 음악이 아닌 쌓이는 시간처럼 모여 추억이 축적되는 음악에 대해 얘기해보자.
노래는 가수가 발표하는 즉시 자신의 생을 살아간다. 마치 뱃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에 발을 딛는 순간 삶이 시작되듯 노래도 마찬가지다. 청중의 귀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자기 인생이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의 음악은 음원으로 소비되고 말아 청중과 교감할 시간이 없이, 다운받은 음원은 주로 스마트폰으로 소비되며, 지겨워지거나 스마트폰에 다른 파일을 집어넣을 때 용량이 부족하면 쉽게 지워지고 잊혀진다.
1990년대, 레코드 가게나 노점에서 들리는 횟수로 순위를 매긴 ‘길보드 차트’의 존재만으로도 알 수 있듯 노래와 대중 간에 진득하게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했다. 열린 공간에서 노래를 들었고, 누군가와 노래로 교감하기도 했다. 이렇게 쌓인 추억으로 인해 당시 노래를 들으면 감정의 울림이 생긴다. 그 노래에 대한 추억이 없더라고 부모와 선배, ‘응답하라 1994’ 같은 미디어로 구전되면서 또 다른 추억이 생산된다.
내년으로 탄생 50주년을 맞는 김광석의 노래들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슈퍼스타K4'에서 로이킴과 정준영이 ‘먼지가 되어’를 듀엣으로 부르자 10대들이 관심이 이어졌다. 고인의 노래는 뮤지컬 ‘그날들’로 엮였으며,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로 계속되고 있다. 한류그룹 ‘JYJ’ 멤버 김준수가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만큼 또 다른 많은 젊은이가 그의 노래를 곱씹게 될 것이다.
최근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내놓은 정규 5집 ‘고독의 의미’는 이러한 면에서 남다르다. 이적의 노래는 그의 말마따나 ‘시간을 견디는 음악’들로 그간 뒤늦게 주목받았다. 대중과 쌓인 추억에 미디어 등 촉매가 더해져 탄력받을 수 있었다.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이 아닌 데뷔 15년 차 가수가 내놓은 발라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저력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음반 레이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 대표는 “카세트 테이프를 포장지에서 뜯어 낼 때 소리와 테이프에서 나오는 잡음, 그것이 음악이라는 범위 안에 다 포함된다”며 “LP판의 경우도 판에 바늘이 닿을 때 나는 잡음과 판을 재킷에서 꺼낼 때 느낌이 다 음악적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응답하라 1994’와 김광석, 이적은 이처럼 아날로그 음악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일깨우고, 시간을 견뎌낸 음악들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컨템포러리 뮤직’을 말이다. 몸도 마음도 조급한 12월에는 순식간에 다운로드되고 금방 삭제되는 MP3 대신 CD나 LP를 꺼내 조금이나마 삶의 여백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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