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과 유족 이어주며 마지막 시간 보낼 수 있게
국내에서는 인식부족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아
최고전문가 김일권 대표 "엠바밍 배우려면 의지 강해야"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가 나이 들어가는 남자의 슬픔을 다룬 소설 『에브리맨』은 남자 주인공의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의 유족들과 지인들은 주인공을 추모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아픔을 씻어낸다. 추모사를 낭독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망자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대신한다.
한국의 장례식은 미국과 달리 일반적으로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바쁘게 진행된다. 유족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차분하게 보내고 싶지만 조문객 접대에 밀려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엠바밍은 시신방부처리 및 복원기술
고인과 유족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신위생처리(엠바밍·Embalming)가 필요하다. 엠바밍 처리한 시신과 뷰잉타임(지켜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고인과 나누지 못한 마지막 정을 나누면 유족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이처럼 엠바밍이 고인과 유족을 이어주는 중요한 분야임에도 국내에는 아직 널리 알려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수요 자체도 많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엠바밍 기술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엠바밍은 시신위생처리 뿐만 아니라 복원도 포함한다. 그래서 엠바밍은 '시신방부 및 복원처리'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엠바밍을 한 시신은 상온에 있어도 부패되지 않는다. 포름 알데히드를 포함해 10여종의 약품 처리를 해 시신은 온전히 보전된다. 엠바밍을 하면 상온에서 3개월 간 지나도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다. 사고사한 시신 또한 엠바밍 전문가를 거치면 생전의 모습처럼 거의 다 복원해낼 수 있다. 물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인식부족으로 엠바밍 널리 쓰이지 않는다. 정작 더 필요한 곳에서도 쓰이지 않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나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엠바밍은 없었다.
엠바밍 전문가 김일권 "엠바밍에 대한 인식, 아직 부족해"
국내 최고의 엠바밍 전문가 김일권 인터네셔널 F.S 대표는 "천안함 사건 때 엠바밍을 위해 현장을 찾아갔으나 군(軍)의 통제로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월호 참사 때도 진도에 갔지만 관계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엠바밍을 하지 못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정부 측에서는 엠바밍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장 자체를 통제했다. 또한 형평성 문제나 비용 문제를 들어 거절한 경우도 있었다.
항간에는 모 대학들이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참사 때 엠바밍을 시도했다 실패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김 대표는 엠바밍 시도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엠바밍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엠바밍을 했는데도 시신의 특정 신체부위 색깔이 변하거나 문제가 생겼다면 이를 최대한 빨리 알아채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밀한 관찰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부검했던 시신은 대충 꿰매져 있는 실을 다 풀고 다시 꼼꼼하게 꿰매야 한다. 유족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섬세한 기술 요하는 엠바밍, 공부 많이 해야 습득 가능해
인식이 부족하고 전문가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기술이 우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엠바밍을 하다 문제가 터지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엠바밍을 해 미국이나 일본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문제가 생길 경우 대사관으로 클레임이 들어온다.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정도다. 유족들이 고인의 상태에 민감한만큼 클레임을 걸 때는 예민한 상태일 때가 많다. 기술이 우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엠바밍을 대충 했을 때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본다. 문제는 이런 일이 아직도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엠바밍은 고도의 기술과 지식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한다. 엠바밍 전문가 김일권 대표는 "미국 쪽에서 신기술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영어 원서를 무리없이 읽는 정도로 영어실력이 있어야 하고, 화학, 의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유족들을 다독일 수 있어야 하고, 고인에 대한 예의는 기본이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무엇보다도 끝까지 해내겠다는 의지 없이 엠바밍을 공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하루 빨리 엠바밍 전문가 교육 이뤄져야"
한국에서는 엠바밍이 최고 전문가 몇 사람에 의해 이뤄지고 있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후진 양성을 고민하고 있다. 김일권 대표는 "엠바밍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조만간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후학 양성이 이뤄져야 다양한 연구를 통해 엠바밍이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유족의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엠바밍.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우리는 아직 엠바밍을 잘 모른다. 하루 빨리 엠바밍 전문가를 양성해 떠나는 이와 남는 이를 홀가분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김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