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문화팀】= "최근의 관찰을 통해 우주의 팽창 속도가 오히려 빨라지고 있음이 발견됐다. 이것은 우주의 에너지가 대부분 물질도, 복사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물질과 복사를 추월한 것이다. 마땅히 더 나은 용어가 없어서 우리는 이 새로운 에너지 형태를 암흑에너지라 칭했다. 암흑에너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이나 복사와 달리 스스로를 밀어내는 중력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팽창이 느려지지 않고 오히려 빨라지는 이유다. 뉴턴의 중력이론에서 모든 질량은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으로 작용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서는 스스로를 밀어내는 중력으로 작용하는 에너지 형태가 허용된다."(32쪽)
"하이젠베르크는 철학에 심취하지 않았다면 결코 양자역학을 연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모든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머릿속을 철학으로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절대로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갈릴레오가 플라톤의 사상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업적을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뉴턴은 자신을 철학자라 생각했고, 데카르트와 이것을 논의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강력한 철학적 개념들을 갖고 있었다."(310쪽)
앨런 구스 미국 MIT물리학과 교수가 쓴 '우주의 통찰'이 번역 출간됐다. 미국의 출판 기획자 존 브록만이 엮었다. 앨런 구스를 비롯해 우주론의 황금기 30여 년을 이끌어온 대표 석학 21인이 직접 자신들의 주요 연구를 소개하고 우주 과학의 핵심 쟁점들을 논하며,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비롯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우주론의 난제 등 우주에 관한 입체적인 지식과 통찰을 전해주는 책이다.
우주론은 물질의 최소 구성단위인 소립자의 역학을 다루는 입자물리학에서부터 별과 항성계의 물리적 상태를 연구하는 천체물리학, 천문학, 실험물리학, 응용수학, 과학철학 등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가 어우러지는 분야다. 상대성이론부터 초끈이론, M이론, 고리양자중력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이론물리학 최전방의 논의들이 진행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우주의 통찰'은 우주를 해석하는 다양한 결을 보여주기 위해 이론물리학, 천문학, 천체물리학, 응용수학, 양자공학 등 각 분야의 선구자 21인의 주요 연구와 핵심 이론을 아우르고 있다.
구스는 1980년대 우주론의 황금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가장 강력한 우주론으로 주목받고 있는 급팽창이론을 설명한다. 빅뱅이론이 뱅(폭발)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폭발이 남긴 여파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대체 무엇이 폭발했고, 무엇이 우주를 막대한 팽창의 시기로 이끌었는지설명하기 위해 급팽창 개념을 도입했다고 이야기한다.
빅뱅이론에서는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 우주의 특성인 균일성(우주는 거시적인 시점에서 보면 평균적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균일하다) 및 평탄성(우주의 기하학적 구조는 매우 평탄하다)을 설명할 수 있게 된 배경, 급팽창으로 완전히 균일해져버릴 수도 있었던 우주가 양자요동으로 인한 미세한 질량밀도 불균형으로 인해 물질 및 은하계가 만들어진 메커니즘을 소개하며 독자들 머릿속에 현대 우주론의 개념적 기둥을 세워준다.
급팽창이론의 경쟁 이론인 순환우주론의 선구자 폴 스타인하르트(급팽창 우주 모형의 초기 설계자이기도 하다)와 닐 투록은 이 책에서 우주의 진화가 순환적으로 이루어지는 원리를 설명한다. 우주가 뜨거웠다가 차가워지고, 밀도가 높아졌다가 낮아지고, 뜨거운 복사 상태에서 우리가 오늘날 바라보는 구조물로, 그리고 결국에는 텅빈 우주로 진화하는 시기를 거치며 이 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순환우주론에는 급팽창이론처럼 우주의 시작이 없으며, 우주의 시공간은 무한히 뻗어 있다.
급팽창이론과 순환우주론의 중요한 물리학적 차이는 '중력파 존재의 유무'이다. 급팽창 모형의 요동은 중력파를 일으킬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격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반면, 순환 모형의 요동은 엄청나게 느리고 차분해서 중력파를 만들어내기에는 너무 약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닐 투록은 앞으로의 중력파 실험을 통해 "우리 모형이 틀렸음이 입증될 수도 있다"며 과학자로서 겸허한 입장을 보여준다.
양자우주론의 선구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과학과 철학의 대화 단절을 비판하며, 20세기 초반까지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가 그랬듯 양자중력 연구에도 철학적 사고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실험과 관측 데이터라는 '경험론적 내용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재의 과학적 방법론을 뛰어넘어, 기존의 사고방식을 탐험하며 세상의 개념적 구조를 새롭게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과학 방법론의 근간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별들은 과거의 모습이다. 우리는 미래로부터 오는 빛은 결코 볼 수 없다. 우리는 미래에 존재하는 항성으로부터 날아오는 별빛을 볼 수 없다. 우리는 미래에 일어나는 초신성 폭발이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 보내는 복사를 결코 볼 수 없다. 그런데 빛의 전파를 지배하는 법칙인 맥스웰 방정식은 시간에 대해 가역적이다. 따라서 미래에 발생하는 사건으로부터 전파되는 빛을 포함하는 해(solution)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우리가 관찰할 수 있도록 정보와 에너지를 과거로 전파하는 해도 존재한다. 이런 해가 우리가 사용하는 해의 종류만큼이나 많이 존재한다."(210~211쪽)
"우주가 실제로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개념은 다소 급진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아주 오래전에 발견된 내용으로, 1860~1900년 통계역학을 개발한 물리학자들인 맥스웰, 볼츠만, 기브스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사실 우주가 근본적으로 정보와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 정보를 '엔트로피(entropy)'라 불렀다. 20세기 기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이들의 과학적 발견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발견한 엔트로피란 원자에 기록된 정보의 비트 수를 말한다. 우주가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418쪽)
존 브록만은 "지금이 바로 우주론의 황금시대인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여기서도 거친 부분들을 상당히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책은 초월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이런 논의의 마지막 장일 리는 없다. 앞으로 몇 달, 몇 년 후면 대형강입자충돌기가 미시세계에 대한 자료를 더욱 많이 쏟아낼 것이고, 강력한 성능의 망원경과 위성들이 거시세계에 관한 우리의 선도적 이론을 지속적을 확인해주면서(혹시나 모를 일이다. 확인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게 될지도…) 분명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부디 그러한 대화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김성훈 옮김, 528쪽, 2만2000원, 와이즈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