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박상용 기자】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사법개혁 논의와 관련해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고 소통과 설득을 통해 국민을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주도의 사법개혁 입법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대법원장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힌 점은 의미가 크다.
사법개혁은 국민의 권리 보장과 정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직결된다. 따라서 국회가 주도한다고 해서 사법부의 목소리를 배제하거나 형식적으로만 반영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조 대법원장이 강조했듯, 과거에도 사법제도 개선은 청와대·대법원·국회·검찰·학계 등이 참여하는 폭넓은 공론 과정을 거쳐 성과를 도출해 왔다. 국민참여재판, 로스쿨 제도, 양형 기준 개선 등은 모두 이런 협력 속에서 이뤄진 결과다.
오늘날 논의되는 대법관 증원안이나 내외부 견제 장치 강화 문제는 단순히 의석 수를 늘리는 문제를 넘어 사법부의 독립성과 하급심 강화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사법부를 배제한 채 국회가 일방적으로 제도를 밀어붙인다면 오히려 국민의 불편과 사법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 대법원장이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며 법관들에게 헌법 정신을 지키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법부 내부의 성찰과 혁신도 중요하지만, 입법부가 권력분립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근본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민은 사법부가 권력의 하수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동시에 재판 지연 해소, 1심 강화, 전자소송 시스템 확대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개혁 과제의 성과도 기대한다. 사법부는 이를 위해 스스로 혁신하고, 국회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진정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사법개혁은 어느 한쪽의 권한 행사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국회와 사법부가 협력과 견제를 조화시키지 못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조 대법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국회가 협치와 숙의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