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1000여개가 삼성증권과 우리은행에 집중 개설된 것으로 확인됐다. 4조5000억원대의 차명재산 대부분이 이들 계좌에서 빠져나갔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이 발견한 1199개의 이건희 차명계좌 중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받은 계좌 1021개의 연도별·금융회사별 현황을 30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이들 계좌 중 20개는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계좌는 1987년 신한증권에 개설된 주식계좌였다.
나머지 1001개는 모두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였다.
금융기관별 분포를 보면 은행계좌 64개, 증권계좌 957개였다. 은행계좌는 우리은행(53개)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어 하나은행(10개), 신한은행(1개) 순이었다.
증권계좌는 삼성증권(756개)이 압도적이었다. 신한증권(76개), 한국투자(65개), 대우증권(19개), 한양증권(19개), 한화증권(16개), 하이증권(6개)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차명계좌는 2004년 이전까지 여러 증권사와 은행들을 돌아가면서 활용됐다. 그러나 2004년부터는 거의 전적으로 계열사인 삼성증권에만 집중됐다. 실제로 2004년 개설된 계좌 153개 중 141개가 삼성증권 계좌였다.
박 의원은 "이건희 차명재산 중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삼성증권 내 차명계좌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확보한 자료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은닉이 금융회사를 악용해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이뤄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오늘 금융위와 금감원에 대한 종합 국감에서 이 문제를 철저히 따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2008년 특검 당시 이건희 회장은 차명계좌를 모두 실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차명계좌에 있는 돈의 대부분을 찾아갔고, 이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위는 차명계좌가 주민등록표상 명의로 된 계좌이기 때문에 금융실명제법상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그간의 판단을 뒤엎고 9년 만에 과세 가능성에 대해 검토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