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정치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이 동력을 크게 잃은 모양새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도 불사할 태세를 보이며 심각하게 충돌하면서 당분간 대화국면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미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촉발된 한반도 긴장 상황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돌이키기 힘든 경계선상을 오락가락줄타기 하듯 이어졌다. 지난 5일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예방전쟁' 가능성 언급 때부터 긴장 국면이 조성됐다. 지난 4월 불거진 한반도 위기설이 재현되는 듯 했다.
여기에 북한 광물 수출의 봉쇄 방안이 담긴 유엔안보리 대북결의안 2371호가 만장일치로 통과(6일)됐고, 안보리 결의를 즉각 준수하라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이 채택(8일)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전방위적 대북압박 분위기가 조성됐다.
또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에 성공했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보도(9일)가 나왔고, 같은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한 "전에 볼 수 없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북한은 이 과정 속에서 정부 성명을 통해 "미국에 천백배로 결산할 것"(7일)이라고 안보리 결의안을 거부했고, 9일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직후에는 전략군 사령부 성명에서 "괌 포위 사격을 검토할 것"이라고 즉각 맞섰다.
10일 북한은 전략군 사령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화성-12형은 3356㎞를 날아가 괌 주변 30~40㎞ 해상에 떨어질 것"이라며 "8월 중순까지 괌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북한 정권의 행동은 우리에 의해 지독하게 제압될 것이며 어떤 무기 경쟁이나 전쟁에서도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한반도 내 긴장감은 계속됐다.
이토록 국제사회에서 혹은 북·미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한국이 끼어들 여지는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문제 인식이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정작 핸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남북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 등 대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예상과 달리 좀처럼 대화국면이 열리지 않는 데에는 당초부터 정부 의지대로 대화와 압박을 무자르듯 분리해 병행할 수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또 북핵문제는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대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테두리 안에서 대화를 기반으로 한 '베를린 구상'을 실현해 나가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미가 힘의 우위에 기반한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핵폐기를 위한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때"라며 대화 시점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을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개발을 중단하는 것이 북한이 대화의 선결조건이라는 게 '베를린 구상'이고, 핵개발 중단을 위해선 강력한 압박을 가해야한다는 게 현재까지의 정부 판단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은 상황이 점점 더 북한에 불리하게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제시한 합리적인 대화 제의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꺼져가는 '베를린 구상'의 모멘텀을 살리려는 정부의 의지로 풀이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교수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치 않다. 제재가 대화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며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것이지, 여건이 조성돼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과거 미국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