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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저러니 조두순이 12년밖에"…불신 받는 법조계 성의식

직장인 박모(26)씨는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첫 언론 인터뷰를 보고 분노했다. 성추행 관련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평소 성폭행 관련 판결에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던 박씨였다. 박씨는 "성폭력이 버젓이 자행되는 조직에서라면 친구가 겪었던 사건이 발생하거나 성폭행범에 대해 낮은 형의 판결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사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촉발된 검찰 내 잇따른 성추문으로 사법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간간이 언론 보도로 드러나곤 했던 각종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가 '필연적'이었다는 의심이다. 나아가 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재판부의 미온적 판결에 대해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여성수사관까지 '막말', 2차 피해 이어져  
 
 성폭력을 비롯한 사건 피해자가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한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지난해 서부지검의 한 검사는 성추행 피해 여성에게 "여자가 술을 왜 마시냐?", "저녁 6시가 넘었는데 왜 밖을 나가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 피해자와 자신이 비슷한 연배라고 이야기하며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 세대는 그런 건 그냥 참고 넘기지 않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피해 여성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김모(27)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씨는 같은 과 선배와 원치 않은 성관계를 가져 상대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신고 후 진술을 위해 검찰에 갔을 때 김씨는 담당 여성 검사와 수사관들로부터 충격적인 발언을 들었다. 당시 수사관은 "어떤 자세로 관계를 하고 있었냐"는 등의 사적인 질문을 다른 수사관들이 있는 앞에서 하도록 했다. 또한 "가해자도 조사 받았는데 멀끔하고 그럴 것 같지 않게 생겼던데", "부모님은 알고 계시냐"는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씨는 "마치 학생이 돼 교장실에 끌려온 기분이었다"라며 "다른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관들도 있는 공개된 자리에서 조사가 이뤄진 것도 당황스럽고 인권을 침해받는 기분이었다"라고 토로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검찰 조사 과정에서의 성희롱 사건은 총 19건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수사관과 피해자의 관계는 일종의 권력 관계"라면서 "피해자 스스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런 권력 관계에서는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사실 입증의 어려움 등으로 진정 접수 건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재판에도 영향 의심…"형까지 낮아지는 것 아니냐"

 재판 과정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해지곤 한다. 최근 한 여대생이 남학생을 대상으로 제기한 성추행 재판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해당 판사는 피해자의 변호사에게 "블랙아웃 있어본 적 없나? 나는 술 먹어봐서 이해가 간다"라고 했다. 목격자들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2014년 발간한 '성폭력 법·정책을 통해 본 피해자의 권리' 보고서에는 전반적인 상황이 수치로 확인된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의에서 2004~2013년 간 진행된 형사사법절차·모니터링 자료 분석 결과, 모니터링을 한 총 123건 중 피해자 권리보장의 '걸림돌' 사건으로 선정된 것은 55건이다. 이 중 재판부가 39건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했다. 검찰은 20%로 그 뒤를 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실제 형조차 이에 영향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미성년 아동을 성폭행한 조두순이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감형돼 12년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성폭행 및 성추행범들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집행유예 등으로 감형되는 경우도 지적된다.

 실제로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에 대한 담당자의 이해 및 전문성 부족, 미온적인 대처 등과 함께 '관대한 처벌 관행' 또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의 유형으로 집계됐다.


 ◇법조계라는 특수한 조직에 적합한 인권교육 필요

 형사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행 성폭력처벌특례법에 의하면 성폭력범죄의 피해자 및 그 법정대리인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형사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각급 법원에는 증인지원실을 설치하고 증인지원관을 둘 수 있으며, 진술조력인 제도도 도입됐다. 

 2010년에는 성폭력전담재판부가 마련됐고 성폭력범죄 전담 검사도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적 방안을 보완하는 것과 동시에 담당자의 '인권 감수성'을 올리는 조치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해당 보고서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경찰과 검사, 판사를 만났느냐에 따라 형사사법과정에 참여할 기회와 그 결과가 매우 달라지기도 한다"라며 "따라서 이들 전담자의 인권 감수성을 키우고, 성폭력 수사 실무에 대한 실제적인 교육을 해야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실장도 "관련 제도는 어느 정도 마련돼 있는데 인식교육 등이 미비한 부분이 있다"라며 "현재 여성가족부 차원에서 공공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하고 있지만 사법계라는 특수한 조직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장 실장은 "법조계는 공공기관 중에서도 위계 및 권위가 강하고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짙은 곳이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은 다른 공공기관과 달라야 한다"라며 "해외처럼 법적으로 사법계 담당자들의 성의식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