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김충현 기자】대구·경북은 보수세력의 총본산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생활방식에서도 보수 색채가 강하다.
그런데 지난 16일 오후 대구 달서구의 한 장례식장에는 노랫말이 울려퍼졌다. 그것도 서정적인 가사가 아니라 요란한 랩이었다.
이날 이 장례식장에서는 조금 색다른 장례식이 진행됐다. 세상을 떠난 분은 서무석 할머니(향년 87세)로 경북 칠곡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 멤버였다.
서 할머니의 영정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야구모자를 뒤집어쓰고, 거미모양의 금속 장신구를 착용한 채 환하게 웃는 할머니는 야구 구단 마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앞에 나란히 선 ‘수니와 칠공주’의 멤버들이 자신들의 대표곡인 ‘에브리바디해피’를 떠나가라 열창했다.
이들은 ‘수니와 칠공주’라고 쓰인 검은색 셔츠를 맞춰 입고 힙합 뮤지션과 같이 손을 위 아래로 휘저으며 연신 랩을 했다.
이들은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로 구성된 경북 칠곡 출신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이다.
멤버인 서 할머니는 지난 1월 림프종 혈액암 3기 판정을 받고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할머니는 그룹 활동에 방해가 될까봐 가족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활동을 했다.
이 장례식은 서 할머니를 위한 ‘수니와 칠공주’의 축하공연으로 채워졌다.
또한 그룹 멤버인 다른 할머니들이 서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편지를 읽으며 추도사를 보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신산한 삶을 겪으며 한글을 미처 깨치지 못했다. 하지만 칠순이 지난 후 칠곡군의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고 시를 썼다.
급기야 힙합그룹까지 만들어 ‘할매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함께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이바지 했다.
서 할머니의 장례식은 한국의 틀에 박힌 장례식도 일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장례 전문가는 “이색 장례식을 가끔 볼 수 있지만, 실제 같이 활동한 멤버들이 공연한 건 처음 접하는 것 같다”면서 “좀 더 다른 형태의 장례식도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