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살예방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국가는 포괄적인 대책을 세우고 지역에서 상세하게 실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생명존중·자살예방 한일교류 연구세미나’에서 일본 전문가들은 국가의 자살예방대책과 함께 지역의 상세한 실천을 강조했다.
기조강연에 나선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이범수 교수는 “2024년도 월별 자살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2023년(잠정치), 2022년보다 높으며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한 자살률 감소 핵심방안은 ‘자살 취약계층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역할’”이라면서 “국가의 자원을 지역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방식(전달체계)을 통해 배분하고 이익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일본의 자살예방백서에 대해 “‘자살대책 인재 확보, 양성 및 자질 향상을 도모하는 대처’ 등 제목부터 친절하고 구체적이다. 주제와 한계가 명확하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전달체계는 지역사회의 모세혈관과 말초신경 역할을 하는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며, 지원하는 재정 인력들은 혈액”이라면서 “일본의 자살대책 항목들의 사례처럼 조직과 인원, 재정을 적절히 공급할 공급자와 수급자 간의 전달체계의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자살대책의 역사와 가와사키시 성공적 실천’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다케시마 타다시(竹島 正) 가와사키시 종합재활진흥센터장은 정부와 지자체 양쪽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다케시마 센터장은 “일본의 자살자 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3차례 급증했고, 4기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제1기는 1998년 자살급증 이전 ▲제2기는 자살급증 후 자살대책 기본법 제정 ▲제3기는 자살이 점점 줄어들지 않아서 긴장했으며, 자살예방기본법 만들고, 기금 예산도 조성 ▲제4기는 자살이 점점 줄어들었고, 자살 대책 기본법은 후생노동성으로 이관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자살자 수는 2019년까지 줄어들다 최근에는 정체되고 있다. 자살자 수가 감소한 이유는 ▲자살대책의 효과 ▲관련 정책의 효과 ▲급증 사태에서 회복 등으로 봤다.
다케시마 센터장은 “WHO 툴킷은 ‘왜 지역은 자사예방에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있다”면서 “지역 스스로가 지역의 요구와 우선과제를 결정하는 데 최적의 위치에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다케시마 센터장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자살대책은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살예방) 계획에 실리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자살예방 대책의 향후 과제로 ▲지자체, 연구자, 자살유족, 지역 지원자의 협동에 의한 상향식의 과학적이고 공평한 자살대책 네트워크 구축 ▲자살대책 정책결정 프로세스에 자살유족의 참여 ▲자살 실태 모니터링 개선 등을 꼽았다.
이노우에 켄(井上 顯) 교토시 고치대 보건서비스센터 클러스터 교수는 ‘일본 자살통계 및 일부 지역의 성공적 자살대책’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일본 자살 통계는 후생노동성과 경찰청, 2가지”라면서 “조사 대상·시점의 차이가 있다”라고 했다. 후생성은 일본의 자살자 수만 다루지만, (일본) 경찰청의 통계는 외국인의 자살자 수까지 포함한다. 사인을 알 수 없을 때 후생성은 원인불명의 사망으로 처리하고 자살로 판명되면 다시 자살로 집계한다. 반면 경찰청은 자살로 판명된 시점에서 자살통계원표를 작성해 숫자를 센다. 자살 통계를 낼 때에도 후생성은 주거지 기준이며, 경찰청은 발견지 기준이다.
주목할 만한 답변도 있었다. 이노우에 교수에 따르면 후생성에 보고된 자살 관련 조사 중 ‘자살을 단념한 계기’를 물었을 때 ‘가까운 사람이 고민을 들어주었다’가 25%에 달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했다’(1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일본 고치현의 경우는 5년 후의 목표를 정하고 자살예방 평가지표를 규정하고 있다. 전 연령층 중 특히 여성에 대한 자살 예방 대책을 강조한다. 시네마현 마쓰에시는 일본 정부의 ‘자살 종합대책 대강’에 따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33년까지 ‘마음의 서포터’를 100만 명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노우에 교수는 “한·일 양국 모두 남녀 자살사망률이 높다”면서 “한국은 일본과 유사한 시기(1998, 2003년)을 기점으로 자살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다”라고 했다. 그는 “각국에 유효한 자살대책은 서로 유효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선 공적 데이터를 이용한 내용을 공동연구 하자”라고 제안했다.
지정토론에 나선 배미남 인천광역시 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한국은 예산 확보 등이 제한된 부분 있고 자살예방만을 위한 예산 확보가 드물다”면서 “재정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양두석 한국생명운동연대 운영위원장 또한 “자살예방 예산은 (현재) 150억 원이 아니라 3천억 원은 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조연희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사무관은 “복지부와 지자체, 지역정신건강센터가 (자살예방을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간담회도 가지고 자살예방센터 등 광역시도 기관과 소통 중”이라고 했다. 조 사무관은 또 “오늘 발표에서 다양한 조사방법을 듣고 인상 깊었는데 경찰청 통계와 심리부검 통해 데이터를 분석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한국생명운동연대와 장종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서구갑)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