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박란희 기자】그간 꺼림칙하게 여겨져 문화 콘텐츠에서 다루지 않았던 장례식장이 주요 무대가 되는 소설이 출간됐다. 장례식장과 죽음에 대한 콘텐츠가 꾸준히 나오는 건 죽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려는 시각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고요한 씨의 소설 『우리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 남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서울 서대문의 장례식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한 남녀 주인공이 밤길을 다니며 청춘을 만끽한다.
소설 초반에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암담한 현실을 상징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주인공들은 죽음 앞에 겸허해진다.
장례식장에서 죽음에 직면하여 진지한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장례식장이 학교와 같은 배움터로 다뤄졌다.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장례식장은 문화 콘텐츠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설이나 드라마·영화 등에서 등장하는 장례식장은 그저 무한한 슬픔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례식장과 장례식 혹은 고인을 애도하는 콘텐츠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최지월 작가는 2014년 제1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상실의 시간들』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주인공의 애도 과정이 심도있게 그렸다.
양수진 장례지도사가 2018년 펴낸 에세이 『이 별에서의 이별』도 자신의 경험담을 담담히 풀어내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양 장례지도사는 “장례업계 비전만 보고 시작한 친구들에게 시행착오나 경험담이 들어있는 책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사를 주인공을 내세웠다.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소재지만,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장례식장이나 죽음 자체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조금씩 옅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이를 성찰하는 콘텐츠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