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위령비 주변에 무너진 묘비가 널려있다. 잡초는 무성하게 자랐고, 쓰레기더미도 수북히 쌓여있다.
"소중한 가족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파헤치지 말아 주세요." "묘비만이라도 돌려주세요."
일본 오사카의 한 반려동물 공동묘지 한 켠에 이 같은 내용의 메시지 카드가 걸려있었다.
반려동물 장례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반려동물 장례시설이 너무 많아 골치가 아프다. 수요보다도 너무 많이 지어진 탓에 방치되고 버려진 시설이 적지 않다.
일본언론인 뉴스포스트세븐의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오사카의 한 반려동물 장례시설은 1991년 만들어진 이래 반려동물 장례식과 화장, 납골까지 도맡아 해왔다. 하지만 올해 1월 돌연 폐업한 뒤 6개월 넘게 방치되고 있다.
장례시설 인근 주민은 "폐업 후에 전부 방치됐다. 그래도 매주 공양하러 오는 이들(유가족)이 끊이지 않는다. (공양하러 오는 이들은) 모두 슬픔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붐에 따라 일본에서는 여전히 반려동물 화장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 전국애완동물 묘원협회 이토 마사카즈 이사는 "3년 전에 조사해보니 전국에 1000개 정도의 반려동물 화장업자가 있었다"면서 "20년 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최근 10년 동안 급증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화장이나 매장에 관해서 '묘지·매장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지만 동물 화장터에 관해서는 법률이나 감독 관청이 없는 실정이다.
이토 이사는 "지자체는 '반경 100m 이내에 민가가 없어야 한다'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개업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것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 화장터가 전국 각지에 난립하면서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문제도 많아지고 있다. 한 반려동물 업체는 "윤리 수준이 낮은 업체가 다수 있다"고 귀띔했다.
"파산 후 뒷처리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업체가 실제로 있다. 투박한 화장로에서 시체를 태워 냄새와 소란을 일으킨다. 진입 장벽이 낮은만큼 반(反)사회적 세력도 있다. 이런 업체에 피해를 입으면 불만을 제기해도 업체가 유족을 위협하고 문전박대 한다."
성실하게 일을 하려면 할수록 이익이 남기 어려운 업계라는 것은 이토 이사도 인정한다.
"깔끔한 화장로를 만들려면 5백만엔~1천만엔(한화 약 5천만원~1억원) 정도 소요된다. 땅값이나 사무실, 공양탑까지 합치면 초기 투자만으로 수천만엔(한화 약 수억원)이다."
장례비용은 1시간에 3만~5만엔(한화 약 30~50만원) 정도이기 때문에 이토 이사는 "과다 경쟁 때문에 초기 투자 회수도 못하고 도산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묘지의 무덤'이 전국에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봄에 반려견(18)을 잃은 42세 주부는 "죽었을 때 정원에 묻으려다가 제대로 추모하고 싶어서 사이타마의 업자에게 부탁했다"면서 "화장과 매장에 10만엔(한화 약 100만원) 정도 들었는데 단독 무덤이 3배나 비싸 합동 장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화장 후 묘지에 매장까지 끝나고 갑자기 업체가 도산했다.
"(도산했다는) 연락도 없었다. 어느날 향을 올리려고 가면 사무원 한 명이 '도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묘지에 옮기려고 우리 아이(반려견) 항아리를 가져와서 받았는데 정말 이것이 그 아이인지..."
일본에 난무하는 상식이하 반려동물 장례업체 때문에 애꿎은 반려동물 주인들만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