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이영돈 기자】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준비 중이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기업들은 미국 투자 확대를 압박받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미·EU 정상회담 직후,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반도체 관세를 2주 후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상무부는 지난 4월부터 반도체 및 관련 장비의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왔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 품목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경우 대통령이 관세를 포함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범용 반도체뿐 아니라 웨이퍼, 기판, 제조장비 부품 등도 포함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7.5%에 해당한다. 비중은 중국(32.8%)이나 대만, 베트남보다 낮지만, 만약 조사 대상 전 품목에 관세가 매겨질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뿐 아니라 전자 부품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다시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 내 생산유인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따라 대미 수출 외에도 제3국 경유 수출이나 미국 완제품 기업과의 공급망 관계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도 미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기지를 짓고 있지만, 아직 미국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미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9.6% 감소했으며, 회사 측은 하반기에는 관세 여파가 더 클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 4~5월 미국이 자동차 및 부품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한 데 따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전방위 관세가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과 대만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당장 대체 공급처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그 이유다.
또한 AI 데이터센터 확장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관세 부과는 미국 자국 기업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반도체 역량 강화 및 중국의 군사적 활용 차단은 초당적 과제"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한미 간 협력은 미국의 산업 생태계를 더욱 고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결국 관세 발표 여부와 구체적 대상, 그리고 이후 한미 협상 추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의 대응 전략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