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김형석 기자】초고령사회에 본격 진입하면서 사망자 급증에 따른 장례 병목 현상이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되고 있다. 화장이 사실상 장례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대도시를 중심으로 화장시설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장례 일정 지연과 원정 화장이 일상화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대형 병원 장례식장 내부에 소규모 화장시설을 도입해 인프라 부족을 완화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 방안이 제시돼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은 10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초고령사회와 생애말기 필수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현행 공설 중심의 경직된 화장시설 공급 체계를 민간 참여가 가능한 분산형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초고령사회에서 장례와 화장은 필수 인프라인데도 불구하고, 공급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 인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임종 준비가 필요한 생애말기 고령인구는 2001년 14만8천 명에서 2050년 63만9천 명으로 약 4.3배 증가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화장률은 94%에 달해 화장이 사실상 표준 장례 방식으로 정착했지만, 화장시설과 화장로 확충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의 상황은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는 분석이다. 서울의 화장시설 가동 여력은 사망자 수 대비 -11.7%로, 적정 가동 한계를 초과한 상태다. 환절기 사망자 증가나 개장 유골 화장이 집중되는 시기에는 장례 일정이 밀리고,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동해 화장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로 인한 시간·비용 부담과 정서적 고통은 고스란히 유족과 지역 주민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에서 신규 화장장을 건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난관이 많다. 화장장은 대표적인 님비 시설로 분류돼 주민 반발이 극심하고, 입지 규제와 인허가 절차도 복잡하다. 실제로 신규 화장장 건립 계획이 장기간 표류하거나 백지화된 사례가 이어지면서, 화장시설은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공설 중심 구조가 굳어졌다.
이러한 한계를 전제로 한국은행이 제시한 대안이 병원 장례식장 내 소규모 화장시설 도입이다. 이는 대형 화장장을 추가로 건설하자는 접근이 아니라, 이미 임종과 장례 기능이 집적된 병원 장례식장 공간을 활용해 소규모·분산형 화장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의료법 개정이 핵심 과제라고 명시했다. 의료법 제49조를 개정해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에 화장업을 포함하고, 의료법 제36조 시행규칙에는 현대적 친환경 기술을 반영한 새로운 시설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기술 발전으로 무연·무취에 가까운 친환경 화장 운영이 가능해진 만큼, 과거 기준에 맞춰진 규제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병원 내 소규모 화장시설은 장례 서비스 구조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임종부터 장례, 화장까지 한 공간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원스톱 구조는 유족의 이동 부담을 줄이고 장례 절차의 단절을 최소화한다. 동시에 특정 공설 화장장에 집중된 수요를 분산시켜 전체 장례 시스템의 병목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독립된 대형 화장장에 비해 심리적 거부감이 낮다는 점에서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화장시설 병목 문제가 특정 시설의 부족이 아니라, 생애말기 필수 인프라 전반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미스매치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노인요양시설 사례를 함께 제시했다. 전국 단일 수가 체계와 지역별 부동산 비용 격차로 인해 수요가 집중된 대도시일수록 공급 유인이 약화되는 구조가 요양시설에서 이미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서울의 노인요양시설 잔여 정원 비율은 3.4%에 불과해 포화 상태인 반면, 일부 비수도권 지역은 상대적 여유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요양시설 사례를 화장시설의 미래 경고로 제시했다. 공급 인센티브 왜곡을 방치할 경우, 화장 인프라 역시 대도시 부족과 지역 간 불균형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요양시설 논의는 별도의 정책 해법이 아니라, 장례 인프라에서도 동일한 실패가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선행 사례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향후 25년간 생애말기 고령인구가 두 배 이상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공 재정만으로 장례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관리·감독과 안전망 구축에 집중하고, 인프라 확충과 운영은 민간의 자본과 효율성을 활용하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장례와 화장은 더 이상 주변부 서비스가 아니다. 보고서는 공급 확충이 지연될수록 그 부담은 유족과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며, 존엄한 삶의 마무리라는 사회적 가치 역시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병원 내 소규모 화장시설 도입 논의가 장례 인프라 전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이제 공은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