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김형석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비수도권에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부·호남권을 축으로 한 균형발전 전략과 함께, 송전거리 비례요금제, 토지수용권 부여, 금산분리 일부 완화 등 굵직한 정책 신호도 함께 던졌다.
이 대통령은 1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보고회에서 “기업들이 지역 균형발전에도 기여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첨단산업 투자를 수도권이 아닌 지역 중심으로 유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균형발전 전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세제·규제·인프라 측면에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입지를 정면으로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을 돌려서 그 지역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정부 역시 이를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남권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RE100 산업단지를 만들고 첨단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기존 구상과 맞닿은 발언이다.
전력 수급과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균형발전 구상의 핵심 도구로 제시됐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는 송전 비용을 전기요금에 부담하는 시스템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밝히고, 송전거리 비례요금제 도입 가능성을 공식 거론했다. 이어 “소위 ‘지산지소’(지방에서 생산하고 지방에서 소비한다) 원칙에 따라 전력 생산지의 전기요금을 낮게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정부 방침”이라며, 전력 생산지 인근에 생산기지를 두는 기업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해지는 구조를 예고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수급 우려와도 연결된다. 이 대통령은 “국가 전체 단위 입장에서 600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는 매우 바람직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수도권 집중 문제와 관련 없지 않다”며, 계획대로 클러스터를 지을 경우 “16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원전 10기 이상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호남에서 생산된 전력을 충남·전북을 관통하는 대규모 송전선로로 끌어올려야 하는 현실, 이에 대한 지역 반발도 함께 짚었다.
입지 유도 수단으로 강력한 규제·제도 카드도 꺼냈다. 이 대통령은 “지방에서 대규모 개발이 이뤄질 경우 필요하면 기업들에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를 해뒀다”며 “지방의 경우 대규모 개발 자체를 기업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보다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이 땅과 전기, 인허가 측면에서 모두 우위에 서도록 제도 설계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첨단산업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공정성장의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 대전제”라면서도 “그 파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다양하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물을 좁게 파면 빨리 팔 수 있지만 깊게 파기는 어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넓게, 더 깊게 파는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게 정책 최고책임자로서의 제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업계가 요구해온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해서는 일부 수용 의사를 내비쳤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대규모 투자의 자금 조달 어려움을 언급하자, 이 대통령은 “금산분리(원칙)를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거의 다 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금산분리 원칙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조달에 제한을 가한 이유는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인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그 문제(독점)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산업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소라서 이미 제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경기지사 시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위해 앞장섰던 일을 언급하며 “저도 경기도와 관련된 일이라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니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도 했다. 수도권이 아니라 비수도권에 클러스터를 배치하는 것이 국가 차원에서는 더 나은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자기 반추로 읽힌다.
AI·반도체 대규모 투자와 함께, 송전·입지·금융 규제까지 손보겠다는 이번 구상은 단순한 산업 지원을 넘어 국가 공간 구조를 다시 짜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관건은 말 그대로 ‘지산지소’ 원칙과 균형발전 의지가 실제 입지 결정, 요금 체계, 법·제도 개편으로 얼마나 일관되게 이어지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