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김형석 기자】지난해 일본에서 상속인 없이 사망한 이들의 재산 가운데 국고에 귀속된 금액이 1천291억엔(약 1조2천2백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상속인이 없는 경우 가정법원이 선임한 청산인이 미납된 세금과 장례비용 등 사후 비용을 정산한 뒤 남은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는 구조다. 일본 법률상 상속인은 배우자, 자녀(직계비속), 부모(직계존속), 형제자매로 한정되며, 친족이 없고 유언장에도 유산 상속인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 재산은 모두 국고로 넘어간다.
이렇게 국고로 귀속된 재산은 지난해 기준 1천291억6천3백74만엔(약 1조2천2백40억 원)으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3년 336억엔(약 3천1백80억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1년 만에 약 3.8배로 불어난 셈이다. 저출생·고령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의 증가 등으로 상속인이 없는 사망자 자체가 늘어난 데다, 상속인 역시 고령이라 번거롭다는 이유로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친족 대신 친분 있는 사람이나 사회 공헌 단체에 재산을 남기는 ‘유증’을 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1년부터 유증 중개 사업을 시작한 도쿄의 한 업체는 현재까지 1천300건이 넘는 상담을 진행한 것으로 전했다. 일본상속학회 부회장인 요시다 슈헤이 변호사는 “의지할 가족이 없는 고령자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유증을 고민한다면 어디에 정확히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유증할 것인지 유언장에 필요 요건을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극심한 고령화와 맞닿아 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초고령사회에서 가족이 없는 노인, 상속을 포기하는 노인, 생전 장례·사후 재산 향방을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노인이 동시에 늘어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장례도 점차 ‘국가·지자체가 책임지는 마지막 복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무연고자의 장례와 유골을 맡는 공설 납골시설·합동묘역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방향은 유사하다. 현행 민법상 사망자의 재산은 배우자·자녀 등 법정 상속인이 우선 상속하지만, 상속인이 없거나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가정법원이 상속재산관리인을 선임해 공고·채권신고 절차를 거친다. 이후 특별연고자에게 일부를 분여하고도 남는 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국세청 자료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2014~2023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무연고 사망자 재산이 국고로 귀속된 금액은 총 121억 원 수준으로 집계된다. 2014년 1천2백만 원에 불과하던 규모는 2023년 16억6천5백만 원까지 늘어, 10년 사이 증가율이 1만%를 훌쩍 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령 1인 가구 증가, 비혼·비출산 확산 등으로 가족·상속 구조가 변하면서 일본과 유사한 ‘상속 공백’ 현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례 영역에서는 이런 변화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가족·연고가 없어 시와 구청이 장례를 대신 치르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를 사람이 있으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지자체 공영장례 제도에 의존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부 광역·기초지자체는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하고, 장례비 지원과 장지·봉안시설을 연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지역 간 편차는 여전히 크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정부도 뒤늦게 제도 손질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던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금 가운데 500만 원 이하는 장기간 법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자체에 귀속할 수 있도록 민법 특례를 마련해, 평균 3년 이상 걸리던 처리 기간을 크게 줄였다. 서울 강동구처럼 ‘무연고자 상속재산 처리 시스템’을 운영해 수년간 방치된 예금을 정리하거나 국고·지자체에 귀속시키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이는 장례비용 정산과 남은 재산의 처리 과정에서 행정 부담을 줄이고, 필요한 곳에 재원을 더 빨리 쓰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한국 모두 고령 단독가구, 무연고 사망, 상속 포기 사례가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상속과 장례를 함께 고려한 ‘생애 말기 설계’가 필수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속인이 없을 때 재산을 자동으로 국고에만 맡기기보다 생전 유언, 공익재단·사회복지법인·지역 커뮤니티 등에 대한 유증 등 다양한 사회 환원 경로를 더 촘촘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남은 과제는 ‘어디에, 무엇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를 본인이 살아 있을 때부터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유언·유증에 대한 공적 상담 창구, 무연고자의 장례와 유산 처리를 표준화한 공영장례·상속관리 제도, 그리고 노년기 재산·장례 설계를 돕는 공공·민간 인프라가 한일 양국 공통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