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V 박상용 기자】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행정·법령·복지·민원 시스템까지 멈춰 국민과 기업이 동시에 불편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 위기 앞에서도 대한민국 정치권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실도,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똑같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목소리만 높다.
대통령실은 국민 앞에 복구 상황과 통제 계획을 설명하는 대신 “허위사실 유포” “법적 조치”부터 거론했다. 국가 전산 인프라가 멈췄는데도 대응 방식은 국정 브리핑이 아니라 홍보·방어 프레임에 머물렀다. 대통령이 언제 보고받았고 어떤 회의를 했는지를 되짚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어떻게 복구하고 재발을 막을지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비상 상황에서는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기능 복구’가 먼저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여전히 순서를 반대로 붙잡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윤석열 정부 시절의 인프라 방치와 관리 부실로 규정하며 공세하지만 복구 협력이나 시스템 안정화 방안에서는 존재감이 부족하다. 사고가 터지면 탓할 상대만 바뀔 뿐,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비판 정치 외에 어떤 성과도 남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초기 대응을 겨냥해 “48시간 실종” “특검” 같은 자극적 언어를 퍼부었지만, 실제 복구나 대안 제시에서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인력이나 예산 협력, 민간 장비 투입 지원 같은 현실적 제안도 없다. 야당일 때도 그랬고, 여당일 때도 그랬다. 불이 나면 물통을 찾는 대신 마이크를 들고 정쟁의 불쏘시개를 던진다.
이번 사태가 드러낸 가장 큰 문제는 전산 시스템의 취약성이 아니라 정치의 중독성이다. 대통령실은 방어하고, 민주당은 탓하고, 국민의힘은 공격한다. 누구도 책임을 나누려 하지 않고, 복구에 집중해야 할 시간마저 정치적 소음으로 덮고 있다. 국가 인프라가 불에 타면 정치권이 함께 뛰어드는 게 아니라 앞다투어 카메라부터 잡는 것이 현실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 화재는 단일 사고가 아니라 예고된 반복의 출발점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겨냥한 언어 경쟁이 아니라 복구 경쟁이다. 원인 규명과 책임 공방은 전산망이 정상화된 뒤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말만 앞선다면 국민은 ‘누가 더 무능했는가’를 따지기보다 ‘정치가 시스템보다 먼저 고장났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전산망은 불에 타 멈췄지만 정치의 불장난은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그 자체가 더 큰 재난이다.
정치가 복구를 선택하지 않으면, 국민은 정치 자체를 교체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싸움이 아니라 복구를 증명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