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v】=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야(對野) 협치 가늠자가 됐다는 평가다.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영향력이 표결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문 대통령의 협치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회는 11일 본회의를 열고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상정했지만 총 투표수 293표 중 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효 2표로 부결됐다. 이로써 전임 헌재소장의 퇴임 후 겪어온 장기공백 사태는 계속되게 됐다.
헌정사상 처음 발생한 헌재소장의 임명동의안 부결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 대통령은 소식을 전해듣고 아무런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을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헌정질서를 정치·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수석은 "야당이 다른 안건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연계하려는 정략적 시도는 계속됐지만, 그럼에도 야당이 부결까지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국민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했다"고 거듭 힐난했다.
청와대와 국회를 오가면서 물밑협상을 벌여온 전병헌 정무수석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헌정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장 인준안 부결이란 사태가 초래된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전 수석은 "우리나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헌법기관장 인사를 장기 표류시킨 것도 모자라 결국 부결시킨 참으로 무책임한 다수의 횡포"라며 "국회가 캐스팅보트를 과시하는 정략의 경연장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의 부결은 상상도 못했다는 윤 수석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청와대가 그동안 매우 낙관적인 태도로 김 후보자의 국회 임명과정을 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헌재소장 부결은 헌정사에 유례없는 일이었기에 여기저기서 약간의 경고등이나 혹은 위험한 시도들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그럼에도 국회에서 헌정사상 초유 사태 일을 벌이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무래도 그동안 국민의당의 협조가 있었고 우리도 국민의당의 의사를 존중해 오는 등 상대적으로 잘 대응해왔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청와대의 낙관적 인식에는 국민의당이 차마 반대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적인 자신감이 자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역풍을 우려해 호남출신의 김 후보자에 반대표를 던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리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청와대가 거론한 '무책임', '배반'이라는 단어들에서 철썩같이 믿었던 국민의당에 대한 심경이 어떠한가를 여실히 읽을 수 있다.
국민의당의 영향력을 여실히 체감한 청와대로서는 남은 정기국회에서 세법 개정안, 부동산 대책, 내년도 예산안 등 입법과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의당에 더욱 밀착 스킨십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야당과 대화하고 협력해서 협치를 구현하자는 자세에 변함이 없다"며 "어찌됐든 간에 여야 지도부가 대통령과 함께 만나 국정현안을 함께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