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에 대한 언론사의 선정적인 보도 경쟁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는 2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아동·여성 폭력 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와 양성평등에 대한 언론의 시선' 세미나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 경쟁으로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이나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지엽말단적인 정보를 제공해 가십거리로 전락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또 "게다가 종합편성채널에서는 변호사, 상담사, 전직 경찰관 등이 패널로 나와 더 작극적인 표현을 하고 CCTV 영상이나 자극적인 그림 들을 자료로 내보내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지난해 10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종편 등 주요 뉴스의 성폭력 및 여성 살해 보도 344건 중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는 15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성폭력 사건 재연'이 61건(41%)에 달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여성가족부가 방심위에 개선을 요청한 건수는 4건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 변호사는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언론보도 유형으로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부정확한 보도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집요한 취재 요청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 보도 등을 꼽았다.
신 변호사는 최근 한 남성 영화배우의 성폭력 사건 관련 '메이킹 필름'을 공개한 언론 보도의 시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남자배우가 실명을 공개하고 법적으로 다투겠다고 하면 '여배우는 왜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느냐, 무죄인가보다'하는 생각을 하게될 수 있다"며 "하지만 성폭력 범죄피해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성폭력은 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암수율이 60%에 가까운 범죄"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의 본질에 대한 기사를 거의 보지 못해 안타깝다"며 "촬영을 빌미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성폭력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 법리적 쟁점은 어떻게 되는가, 영화계와 문화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을까 등에 대한 보도가 훨씬 가치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요즘 기사들 중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무고에 대한 내용도 언론에 많이 보도돼 '꽃뱀'이 득실거리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하지만, 성폭력 사건은 일반 형사 사건의 무고와 별 차이가 안나거나 오히려 더 적다"고 강조했다.
언론의 선정적·관습적 보도 행태 개선이 양성평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정치인은 정치를 잘하고 좋은 정책을 만들고 바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을 해야하는데 여성 정치인은 항상 예쁜지 미운지가 관점이 된다"며 "여성이 대상화되는 것"고 비판했다.
변 교수는 부산 에이즈 감염 여성 성매매 사건 관련 보도와 관련해서도 "여성이 지적장이인이었기 때문에 에이즈가 있고 성매매를 해서는 안된다는 관념이 없을 수 있다. 동거남이 있어 계속 성매매를 시켰다."며 "여성이 이 고리 안에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는데 여성에 대해 포커스를 두고 문제를 보다보면 여성만 혐오하고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성평등과 관련해서 혐오 담론이 많이 나오고 있는 이 시점은 오히려 남성과 여성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다 터뜨려야 하는 시점"이라며 "지금은 더 좋은 쪽으로 갈지 더 나쁜 쪽으로 갈지의 분기점이고. 이때 중요한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고 여성가족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는 언론인 40여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세미나에서 양성평등과 성폭력·2차피해 방지를 위한 언론의 역할과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