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입던 옷, 나무관(棺)->종이관…작은 장례 서약자만 1천명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어서'…작은 장례식은 반값 장례식
일본에서는 셀프장례 활발…업계 전문가 "우리나라도 확산될 것"
반값 장례식·착한 장례식 등 작은 장례식이 확산되면서 장례문화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거주하던 김모씨(75)의 장례식은 특별하게 치러졌다.
평소 즐겨입던 옷을 고인의 수의로 대신하고, 관은 값비싼 나무관 대신 종이 관을 썼다. 김씨가 생전에 작성한 '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 내용에 따라 장례 절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약서에 '자녀들에게 장례비용으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는 생전에 서약 내용을 자녀들에게 알리며, 서대문구와 협약을 맺고 있는 병원과 상조업체를 이용해 장례를 진행토록 거듭 당부했다.
▲서대문구(구청장 문석진)에서 추진한 ‘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에 천여명의 주민이 서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평균 장례비용 1,328만원(2015년 한국소비자원 발표)의 45% 수준인 600여만 원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장례를 치른 이모씨(51)의 자녀는 "갑작스레 닥친 어머니의 별세에 정신이 없었지만, 생전 작성해 놓으셨던 ‘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와 서대문구 협약 기관들을 통해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자녀는 장례를 잘 치르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구청에 남기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구청장 문석진)가 허례허식과 보여주기식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추진해 온 ‘작은 장례 문화 확산 운동’이 결실을 맺고 있다.
구는 ‘장례 문화 인식 개선 강연’을 열고 자신의 장례 절차를 유언으로 남기는 ‘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 작성 운동’을 펼쳐왔다.
서약서를 통해 값비싼 수의나 관 대신 평소에 즐겨 입던 옷과 종이 관을 선택할 수 있다. 수의와 관만 저렴한 제품으로 바꿔도 장례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또 장례 기간, 시신처리 방법, 부고 범위 등을 정할 수 있고,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남길 수 있다.
서약서는 서대문구 각 동주민센터, 구청 복지정책과에 비치돼 있다. 구청 홈페이지(자주 찾는 정보→작은 장례식→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 작성하기)를 통해 온라인으로 작성 후 인쇄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천여 명의 주민이 이 서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서대문구는 작은 장례 실천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역 내 동신병원과 협약을 맺고 ‘작은 장례 실천 서약서’를 작성한 구민이 이 병원 빈소를 사용할 때 10% 할인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저렴하게 장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상조업체를 공개 모집하고 지난해 9월, 3개 업체와 협약을 체결했다.
희망하는 서대문구 주민들은 이 업체들을 통해 시중 비용보다 50% 이상 저렴하게 상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문석진 구청장은 “경제적 부담을 주는 장례문화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복지”라며 “서대문구가 시작한 이 운동이 우리나라 장례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데 작은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대문구의 도전은 다른 지자체에도 자극이 되고 있다.
앞서 서울시 또한 착한 장례식(반값 장례식)을 도입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기존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에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 10개월 만에 4백여 건에 가까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셀프장례 시장이 크게 발달한지 오래다.
일본 대형 유통센터에서는 셀프 장례 설명회를 흔히 볼 수 있고 장례용품이나 절차를 미리 정해둘 뿐 아니라, 상속이나 연금 같은 노후 상담까지 해주고 있다.
서대문구의 '작은 장례식' 실험이 성공하면서 국내에서도 작은 장례식이나 셀프 장례식이 퍼져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내 장례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슈카스(終活·임종을 준비하는 활동) 시장이 커지는 데 발맞춰 소박한 장례식도 퍼지고 있다"면서 "아예 집에서 치르는 장례식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업계도 소박한 장례식을 원하는 고객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준비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충현 기자>